
사실 목적이 분명했던 건 아니다.
그냥 요즘 머리가 너무 시끄러워서, 말이 적은 공간에 가고 싶었고,
디자인 이야기가 아닌, 디자인 이전의 시간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.
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다.
트렌드는 주 단위로 바뀌고, 디자인은 늘 “새로워야” 살아남는다.
AI가 이미지를 만들고, 레이아웃을 짜고, 색을 추천해주는 시대에
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 따라붙는다.
그 질문을 잠시 내려놓고 싶어서 박물관을 선택했다.
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서자, 공간의 속도가 확연히 달라진다.
천장은 높고, 소리는 낮고,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줄인다.
이곳에서는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.
전시는 관람객을 끌어당기지 않고, 그저 그 자리에 오래 서 있다.
그 태도가 요즘 디자인에서는 보기 힘든 종류의 자신감처럼 느껴졌다.
유물 하나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.
이 물건들은 ‘사용자 경험’을 고민하지 않았다.
‘브랜딩’도 없었고, ‘타깃 설정’도 없었다.
그런데도 수백 년, 수천 년을 건너 여기까지 와 있다.
어쩌면 진짜 오래가는 디자인은
설득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,
침묵을 견디는 힘을 가진 게 아닐까 싶었다.

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이나 여백의 미 같은 단어로는
이 얼굴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.
그 표정은 디자인된 결과라기보다
오랜 시간 동안 쌓인 태도에 가까웠다.
‘덜어냄’이 아니라,
‘굳이 더하지 않음’에 가까운 상태.
요즘 디자인 트렌드를 보면
메시지는 점점 더 직설적이 되고,
형태는 점점 더 강해진다.
스크롤을 멈추게 해야 하고,
눈에 띄어야 하고,
3초 안에 이해시켜야 한다.
하지만 박물관에 있는 것들은
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.
그저 “있을 뿐”이다.
그 점이 오히려 지금 시대에 가장 낯설다.
존재하지만 설명하지 않고,
보이지만 강요하지 않는 것.
요즘 디자인 씬에서 가장 희귀한 태도다.
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서
‘요즘의 디자인은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있구나’라는 생각이 들었다.
컬러도, 타이포도, 모션도
전부 동시에 소리친다.
침묵이 불안해진 시대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.

박물관 밖으로 나왔을 때
날씨는 여전히 바쁘고, 사람들도 여전히 빠르게 움직였다.
하지만 머릿속에는
조금 느린 기준 하나가 생긴 느낌이었다.
앞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
“이게 지금 유행하나?”보다
“이건 조용히 오래 버틸 수 있을까?”를
한 번쯤 더 생각해보고 싶어졌다.
국립중앙박물관은
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,
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장소였다.
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남았다.